전체 글
글 457개
《바람의 빛깔》의 공식 소개에서 할아버지는 고장 난 선풍기의 머리를 반대로 달고도 날개를 다시 돌린다. 청각과 정신에 장애를 갖게 된 그는 해운대의 작은 숲에 버려진 물건을 모아 자기 세계를 만든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미대에 들어간 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잃어버린 손녀다. 이 글은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한 상영 전 분석이며 영화를 직접 관람한 후기가 아니다.선풍기는 ‘원래대로’ 고쳐지지 않았다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는 선풍기 날개가 다시 돌지만 머리는 반대로 달렸다고 적는다. 이 작은 어긋남이 중요하다. 물건을 완벽한 원상복구의 상징으로 보면, 할아버지의 장애까지 ‘고쳐야 하는 것’으로 연결하기 쉽다. 그러나 선풍기는 다른 모양으로도 바람을 만든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선풍기에 빗대는 말은 소개문에 ..
《어크로스: 전쟁은 어떻게 잊혀지는가》의 공식 소개는 베를린의 소송, 사르데냐의 시위, 제주에 도착한 예멘 가족을 차례로 놓는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서 이 세 곳을 잇는 사건은 예멘 전쟁이다. 이 글은 소개문에 나온 세 장소의 역할을 구분해 읽는 상영 전 분석이다.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후기나 개별 소송의 법적 판정이 아니다.세 장소는 같은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다베를린에서는 인권변호사 카넬이 전쟁범죄 관련 소송을 진행한다. 사르데냐에서는 STOP RWM 활동가들이 군수업체의 공장 확장과 무기 수출에 반대한다. 제주에서는 후티 반군을 피해 온 예멘 출신 자말과 가족의 삶이 등장한다. 각각 법적 책임, 생산과 수출에 대한 저항, 피난 이후의 생활이라는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이들을 한 문장으로 ‘전..
《리커버리》는 여성 액션영화를 찍고 싶다는 감독의 꿈에서 시작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소개는 그 꿈이 과거의 상처와 연결된다고 밝힌다. 임연정 감독이 주짓수 도장에서 구르고 서핑을 배우는 과정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기억을 함께 제시한 자기 다큐멘터리다. 이 글은 프로그램 노트에 근거한 상영 전 분석이며 본편을 본 후기는 아니다.액션을 ‘보는’ 감독이 직접 몸을 움직일 때영화제는 임연정 감독이 여성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어 몸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주짓수와 서핑을 배운다고 소개한다. 여기서 스포츠 도전은 완성된 액션 장면의 흉내보다, 균형을 잃고 다시 몸을 세우는 시간을 경험하는 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실제 훈련의 방식이나 숙련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담겼는지는 소개만으로 알 수 없다.여성이 강해지..
《비터 크리스마스》의 영화 속 감독 라울은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시나리오로 쓴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는 예술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삶을 가져와도 되는지 묻고, 감독 라울과 엘사를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분신으로 소개한다. 이 글은 공식 소개의 두 층위, 곧 영화 속 창작과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자기 고백을 구분해 읽는 상영 전 분석이다. 관람 후기가 아니다.라울이 겪은 일과 다른 사람이 겪은 일자신이 참여한 관계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 관계에 있던 모두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창작자가 자기 경험을 말할 자격을 처음부터 부정할 수도 없다. 영화제 소개에서 라울이 가까운 이들의 삶을 소재로 쓴다는 대목은 바로 이 긴장을 만든다. 이름과 사건을 바꾸었더라도 누군가가 ..
《엄마의 바다》의 공식 소개는 ‘누가 옳은 보호자인가’보다 가족이 다른 사람의 여생을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아만다와 새아버지 마틴은 중증 치매를 앓는 레슬리를 두고 맞선다. 이 글은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를 읽고 갈등의 구도를 짚는 상영 전 분석이며, 영화를 관람한 후기는 아니다.아만다와 마틴이 다투는 동안 레슬리는 어디에 있나프로그램 노트는 사랑과 폭력, 자율과 침해, 보호와 통제를 나란히 놓는다. 선한 가족과 나쁜 가족을 미리 정해 두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신호다. 아만다와 마틴의 주장이 서로 다르더라도, 그 논쟁이 레슬리의 현재 생활과 의사를 얼마나 보여주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레슬리가 말을 하거나 반응하는 순간을 영화가 어떻게 담는지, 두 사람이 그 반응을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
《부아》가 제시하는 첫 갈림길은 미인대회에 나갈지보다 방콕으로 갈 방법을 누가 정하느냐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에서 열다섯 살 부아는 시골의 숯공장에서 할머니와 살고, 어머니를 찾고 싶어 할머니 몰래 미인대회 수업을 받는다. 이 글은 공식 소개를 읽고 인물에게 주어진 선택의 조건을 살펴본 상영 전 분석이다. 영화를 관람한 후기는 아니다.방콕행의 목적과 미인대회의 수단부아의 목표는 어머니를 만나는 것이다. 미인대회 수업은 그 목표에 닿을 수 있을 듯한 경로다. 두 가지를 같은 ‘꿈’으로 묶으면, 부아가 왜 자신의 외모를 기회로 삼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는지 놓치기 쉽다. 프로그램 노트는 할머니의 건강 악화와 주변 남성들의 이용 시도를 함께 소개한다. 보호자의 돌봄이 불안정해지는 시기, 도움을 주겠다는..
《탯줄》의 공식 소개에서 어머니 디나라는 아들을 지키려 하지만, 아들이 겪은 사건을 전부 알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미국 대학 입학을 앞둔 쿠아니시는 친구들과 클럽에 갔다가 폭행 사건에 휘말리고,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사건의 성격이 바뀐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는 영향력 있는 친구들의 부모가 책임을 쿠아니시에게 떠넘기려 한다고 소개한다. 이 글은 그 출발점의 정보와 권력 차이를 읽는 상영 전 분석이며 관람 후기가 아니다.아들을 믿는 마음과 사건을 아는 일디나라는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그러나 십 대의 쿠아니시에게는 어머니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설명이 함께 나온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사실관계를 아는 것과 같지 않다. 클럽에서 누가 어떤 행동을 했고 사망과 어떤 관계가 ..
《어둠 속의 새들》의 출발점은 경찰 정보원 자그타르가 카슈미르 출신 무슬림 남성 아미르를 연행하는 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는 두 사람이 이동하는 동안 자그타르가 아미르를 놓아주고, 두 사람의 길이 농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고향에서 다시 연결된다고 소개한다. 이 글은 그 이동과 관계를 읽는 상영 전 분석이다. 관람 후기가 아니다.놓아주는 한 번의 행동으로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연행한 사람을 놓아주었다는 사실은 자그타르의 선택이지만, 그 한 번의 행동이 그가 속한 권력 관계를 지우지는 않는다. 자그타르는 경찰 정보원이고, 아미르는 그에게 붙잡혀 이동하던 사람이다. 두 사람이 같은 여행을 했다고 해도 처음부터 같은 자유를 가진 동행은 아니다. 본편에서 자그타르가 왜 그를 놓아주는지, 그 뒤 ..
《셀비》의 부산국제영화제 소개에는 시간이 숫자로 쌓인다. 방문 돌봄 노동자 셀비의 근무 교대는 친구 카비타의 몫까지 맡으면서 12시간에서 24시간, 48시간, 72시간으로 길어진다. 이 글은 공식 소개에 적힌 시간의 변화가 인물의 꿈과 노동을 어떻게 충돌시키는지 읽는 상영 전 분석이다. 영화를 직접 본 후기는 아니다.친구를 돕는 일이 왜 끝나지 않는 근무가 되나프로그램 노트는 카비타가 연애의 실패 뒤 자살을 시도하고, 셀비가 친구의 근무 시간까지 떠맡는다고 전한다. 친구를 돕고 싶은 마음과 돌봄 노동을 대신할 사람이 없는 현실을 같은 원인으로 묶으면 안 된다. 근무가 늘어난 결정이 누가 내린 것인지, 고용주와 돌봄 대상자의 요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소개문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셀비의 헌신만 ..
《나의 유죄인간》의 공개 사진과 캐스팅 소개에는 윤이준 곁의 ‘비서’가 한 사람만 있지 않다. tvN은 살인 용의자와 형사에서 상무와 수행비서로 관계가 바뀌는 상황을 현장 사진의 문구로 소개한다. 별도로 배우 정한설의 출연 발표에는 윤이준을 오래 보좌하는 정다운 비서가 나온다. 이 글은 방송 전 공개된 두 역할의 차이를 짚는 프리뷰다. 실제 방송 장면을 본 후기가 아니다.정다운과 강재희가 아는 정보는 처음부터 다르다정다운은 윤이준의 취향과 생활 패턴, 사생활을 알고 곁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소개됐다. 강재희는 특수부대 출신 형사로, 수행비서라는 자리에서 다른 목적을 갖는 인물이다. 둘 다 윤이준과 가까이 있을 수 있지만, 가까움의 이유가 같다거나 서로 같은 정보를 공유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일상적으로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