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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총 12,109행, 24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작품입니다. 저는 테넷 때처럼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갔다가 또 후회할 자신이 없어서, 이번엔 개봉 전에 원전부터 파고들기로 했습니다.

영화 오디세이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2026년 8월 5일 국내 개봉
테넷에서 배운 교훈, 이번엔 순서를 바꿨습니다
저는 놀란 감독 영화를 아무 정보 없이 보러 갔다가 크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테넷이었는데, 상영 내내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고, 극장에서 나와 해설 영상을 세 개쯤 찾아본 다음에야 겨우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있다면, 이 감독 영화는 극장에서 처음 이해하려 들면 손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오디세이는 순서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개봉 전에 원전 강의부터 찾아본 것이죠. 사실 오디세이아는 대학 때 한 번 펼쳤다가 3권쯤에서 덮은 기억이 있습니다. 등장인물 이름이 죄다 비슷하게 들리고 신들이 계속 끼어드는 구조가 어지러웠거든요. 그런데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그 앞부분에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텔레마키아, 오디세이아의 숨겨진 첫 번째 층위
《오디세이아》를 처음 집어든 사람이 가장 당황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1권부터 4권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아들 텔레마코스입니다. 이 앞부분 4권을 문학 연구에서는 특별히 텔레마키아(Telemacheia)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텔레마키아란 단순히 '텔레마코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훨씬 층위가 깊습니다.
배경을 짚어두면 이렇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끌려간 지 20년이 됐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이 10년, 귀향길에서의 표류가 3년, 그리고 칼립소(Calypso) 여신의 섬에 억류된 기간이 7년입니다. 이타카 섬에는 108명의 구혼자들이 궁전을 점거한 채 아내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 신생아였던 텔레마코스는 이미 수염이 나는 청년이 됐습니다.
바로 이 시점, 올림포스 신들의 회의에서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의 승인을 얻어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추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신이 일방적으로 사건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사건의 실제 진행은 반드시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테네는 멘테스(Mentes)라는 인물로 변장해 텔레마코스에게 나타나고,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필로스(Pylos)와 스파르타(Sparta)로 여행을 떠나도록 이끕니다.
저승여행의 흔적, 텔레마코스의 이동에 숨겨진 코드
대학 때 3권에서 책을 덮었던 저는, 이번에 텔레마코스의 여행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버지 소식을 수소문하는 단순한 여정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그 이동 경로를 분석하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우선 야간 항해 문제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야간 항해는 금기에 가까웠습니다. 강한 바람이 밤에 일어나 배를 난파시킨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작중 시점은 겨울 직전입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겨울과 폭풍은 '케이몬(cheimōn)'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될 정도였습니다. 즉 지중해 동부에서 겨울은 배를 띄울 수 없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텔레마코스는 한밤중에 출항해 다음날 새벽 필로스에 도착하고, 귀국길에도 똑같이 야간에 출항합니다.
육로 이동은 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필로스에서 스파르타로 가는 직선 경로 사이에는 길이 약 100km, 높이 2,400m에 달하는 타이게토스(Taygetos) 산맥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텔레마코스 일행은 2인승 입식 전차를 타고 이 산을 어떤 장애도 없이 주파합니다. 전차는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전장이나 경주 전용 이동 수단이지, 장거리 산악 여행용이 아닙니다.
이 비현실성이 단순한 서사적 허용(poetic license)이 아닐 수 있다는 근거가 있습니다. 서사시 전체에서 태양이 지고 모든 길이 그늘에 덮였다는 표현이 정확히 일곱 번 등장하는데, 그중 두 번은 텔레마코스의 야간 항해, 세 번은 전차 이동 장면, 나머지 한 번은 오디세우스 일행이 저승의 문턱에 이르는 장면에 쓰입니다. 같은 정형구(formula)가 특정 문맥에서만 반복된다면, 그것은 의도된 병치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 야간 항해 2회: 이타카 출항, 필로스 귀환
- 전차 이동 3회: 필로스↔스파르타 왕복 구간
- 저승 도입부 1회: 오디세우스 일행의 하데스 입구 도달
- 공통점: 세 장면 모두 동일한 정형구로 마무리된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대위법적 구조로 읽는 법
제가 이 분석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대위법(counterpoint) 구조입니다. 대위법이란 음악 용어로, 서로 독립적인 두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화음을 이루는 기법을 가리킵니다. 호메로스는 이것을 서사시에 적용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서 인간 세상 밖을 떠도는 동안, 아들 텔레마코스는 현실처럼 보이는 여정 안에서 사실상 인간 세상 바깥의 속성을 띤 여행을 하고 있다는 구조입니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텔레마키아는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거울처럼 대응합니다. 5권부터 12권에 걸쳐 오디세우스가 겪는 괴물, 마녀, 저승 방문의 여정이 전경(foreground)이라면, 1권부터 4권의 텔레마코스 여행은 그 배경(background)에서 이미 같은 성질의 이야기를 먼저 한 번 통과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처음 읽을 때는 거의 안 보입니다. 텔레마코스 파트에서 그냥 '주인공이 왜 아직 안 나오지?' 하고 지루함을 느끼다가 덮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저도 대학 때 딱 그랬고요. 그런데 이 구조를 알고 다시 읽으면,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세계에서 동시에 어떤 경계를 넘고 있다는 감각이 살아납니다. 텔레마코스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그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 변화가 단순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일종의 통과의례(rite of passage)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전지식이 있어야 재밌다는 말, 저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솔직히 이 강의를 보고 나서 바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걸 영화 관람 전 사전지식으로 묶어 소개하는 건 조금 어긋난 틀이라는 것입니다. 강의 자체는 탄탄합니다. 텔레마키아의 서사 구조를 문헌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내용인데 완성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그런데 이건 명백히 원전 독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예습과는 거리가 꽤 있습니다. 잘 만든 각색이라면 원전을 모르는 관객도 영화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바로는, 놀란 감독은 원작이 있는 작품도 자기 언어로 완전히 재조립하는 쪽입니다. 오펜하이머가 그랬고 프레스티지도 그랬습니다. 즉 호메로스가 텔레마키아를 왜 맨 앞에 놓았는지 안다고 해서, 놀란이 영화에서 같은 구조를 쓸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원전 지식이 영화를 특정한 방식으로만 읽게 만드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전지식이 있어야 재밌다'는 말이 홍보 문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영화의 미덕이 아니라 약점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이 강의를 추천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영화를 본 이후에, 원작이 어떤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는지 따라가는 용도로는 오히려 훨씬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순서를 바꾸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참고로 이 강의는 3부작 중 1편이라, 이것만으로 원전을 다 훑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오디세이 보기 전에 원작 오디세이아를 꼭 읽어야 하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잘 만든 각색 영화는 원작 없이도 극장 안에서 이야기가 성립되도록 설계됩니다. 다만 원작의 서사 구조, 특히 텔레마키아와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어떻게 대위법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알면 영화를 본 뒤 원작으로 넘어갈 때 훨씬 풍부하게 읽힙니다. 관람 후 독서 순서를 권장합니다.
Q. 영화 오디세이 러닝타임과 개봉일은 어떻게 되나요?
A. 러닝타임은 172분이며 국내 개봉일은 2026년 8월 5일입니다. 당초 7월 15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약 3주 연기됐습니다. 북미는 7월 17일에 먼저 개봉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 중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최초의 작품이라, 가능하다면 아이맥스 상영관을 권합니다.
Q. 텔레마키아가 오디세이아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나 되나요?
A. 오디세이아는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1권~4권이 텔레마키아에 해당합니다. 전체 12,109행 중 약 6분의 1 분량입니다. 비율로 보면 작지 않고, 호메로스가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핵심 역할을 합니다.
Q. 오디세이아에서 신들이 자꾸 끼어드는 구조가 읽기 불편한데, 어떻게 보면 되나요?
A.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신의 개입은 사건을 대신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촉발 조건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아테네가 텔레마코스에게 여행을 권유하지만, 실제로 배를 빌리고 동료를 모아 출항하는 건 텔레마코스 본인입니다. 신은 방향을 제시하고 인간이 실행한다는 구조로 읽으면 신의 개입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Q. 칼립소 섬에 억류된 기간이 정확히 몇 년인가요?
A. 원전 기준으로 7년입니다. 트로이아 전쟁 10년, 귀향 도중 표류 3년, 칼립소 억류 7년을 합치면 총 20년이 됩니다. 오디세이아는 바로 이 20년째 시점, 즉 칼립소 섬에서의 억류가 끝나가는 순간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번에 오디세이아 원전 구조를 짚어보면서 제가 얻은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텔레마키아라는 앞부분이 단순한 도입부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저승 여행과 대위법적으로 설계된 정교한 서사 장치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런 분석이 영화 관람 전 예습으로는 다소 과하거나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놀란 감독 영화는 사전 정보보다 극장 안에서의 첫 충격이 훨씬 중요합니다. 원전 지식은 영화를 본 뒤 원작으로 돌아가는 디딤돌로 쓰는 것이 더 맞습니다. 오디세이아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면 천병희 역(숲) 완역본을 권합니다. 저처럼 3권에서 덮지 말고, 이번에는 텔레마키아의 야간 항해 장면을 눈여겨보면서 읽으면 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