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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함께 산다는 제안은 자유로운 관계의 선언일 수도, 한 사람이 결정을 미루는 방법일 수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비트윈 투 러버스 소개에 따르면 그림책 작가 우타는 남편 모리오와 편집자이자 연인인 준나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한다. 두 연인이 각각 아이를 원하자 우타는 셋이 가족을 이루자고 제안한다. 본편의 구체적 대화와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은 가족의 형태가 새롭다는 사실보다 그 제안에 동의하는 과정과 일을 나누는 방식이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는지 따진다.
비밀로 시작한 관계에 동의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우타의 이중생활이 공개된 뒤 세 사람이 같은 집에 살기로 한다면, 동의는 처음부터 대칭적이지 않다. 모리오와 준나는 서로에 대해 언제 무엇을 알았는가. 거절하면 기존 관계를 잃을 수 있다는 압박 아래 내린 선택도 ‘자발적’이라고만 부를 수 없다. 영화가 세 사람의 합의를 보여줄 때 사랑의 선언보다 정보의 시점과 철회할 권리를 먼저 살펴야 한다.
아이를 원하는 마음은 한 문장이지만 책임은 여러 해다
공식 줄거리에서 두 연인이 동시에 아이를 원한다는 사건은 관계를 움직이는 기폭제다. 그러나 양육은 한 번의 대답보다 훨씬 긴 시간의 노동이다. 임신·출산에 관한 선택, 아이가 아플 때의 돌봄, 생계, 서로 다른 부모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묻지 않으면 ‘세 사람의 가족’은 우타의 재치 있는 해결책으로만 남는다. 아이는 성인들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가진 사람이다.
합의해야 할 일왜 별도 질문인가
| 서로에게 알릴 정보 | 비밀의 출발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
| 돌봄과 생계의 분담 | 관계의 자유가 한 사람의 노동이 되지 않게 |
| 떠날 수 있는 조건 | 아이와 남은 사람의 안전을 함께 생각하기 위해 |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도 가족 안에 들어온다
준나는 우타의 연인이면서 편집자다. 두 사람이 사랑을 논의할 때는 원고를 둘러싼 판단과 경제적 이해도 따라올 수 있다. 누가 우타의 책을 평가하고, 관계가 흔들리면 일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영화가 다루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 직업 관계를 지우면 셋의 갈등이 온전히 사적인 감정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가족의 새로운 모양은 집 밖의 권력 관계와도 부딪힌다.
셋의 대화만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타가 제안을 꺼낸 자리에서는 모리오와 준나가 각자 우타에게 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이 우타 없이 서로에게 무엇을 묻는지도 중요하다. 경쟁자로만 만나면 둘의 이해관계는 우타를 중심으로 정렬된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거나 끝내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화가 있다면, 세 사람의 관계는 한 주인공이 설계한 해법을 넘어 각자의 선택으로 보일 것이다.
모리오와 준나를 찬반 투표자로 만들지 않기
우타의 제안이 중심 사건인 만큼 남편과 연인이 허락하거나 거절하는 인물로만 남기 쉽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에는 우타 밖의 친구, 일, 생활 계획이 있을 것이다. 영화가 이를 어떻게 보여주는지는 본편에서 확인해야 한다. 비평의 기준은 분명하다. 제안의 창의성보다 모리오와 준나가 자기 언어로 조건을 말하고 결정을 바꿀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가족을 그린 그림과 생활의 장부는 같지 않다
우타가 그림책 작가라는 설정은 따뜻한 가족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만든다. 그러나 그림 속 자리 배치와 매일의 생활은 다르다. 같은 식탁에 앉아도 누구의 일정이 먼저 밀리고 누구의 일이 돌봄 때문에 중단되는지에 따라 가족의 모양은 달라진다. 영화가 보기 좋은 구성보다 생활의 구체적인 비용을 보여 준다면, 우타의 창작 능력과 관계를 운영하는 능력 사이에도 의미 있는 거리가 생긴다.
전통 가족 비판과 자기기만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일부 관객은 세 사람이 가족을 꾸리는 설정 자체를 문제 삼고, 다른 관객은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으로 반길 수 있다. 어느 쪽으로 먼저 판정하면 인물의 구체적 행동을 놓친다. 세 사람의 형태가 낯설어도 공정할 수 있고, 반대로 진보적인 말로 불공정을 가릴 수도 있다. 영화의 힘은 선택을 칭찬하거나 처벌하기 전에 각자가 무엇을 알고 감당하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을 것이다.
공개 전의 관전 결론
공식 작품 정보는 우타의 이중생활과 세 사람의 동거 제안까지 확인해 준다. 실제 합의 과정과 결말은 아직 모른다. 나는 ‘이 가족은 가능한가’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 세 사람이 같은 식탁에서 자신의 조건을 수정할 수 있는지 보려 한다. 새로운 가족의 윤리는 인원수가 아니라 정보를 나누고 돌봄을 분담하며 떠날 권리까지 생각하는 대화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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