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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볼|끊긴 역사와 퀴어의 기억을 어떻게 되찾나

빅머니포유 2026. 10. 9. 14:00

이 글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작품 소개를 읽고 쓴 상영 전 분석입니다. 실제 관람 장면이나 결말을 확인한 후기는 아닙니다.

제목에 남은 이름 없는 물체보다 중요한 부재

<블랙 볼>의 공식 프로그램 노트는 제목이 1936년 처형된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미완성 희곡에서 왔다고 밝힌다. 영화는 1932년, 1937년, 2017년을 살아가는 세 남자의 삶을 엮으며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가 남긴 흔적을 다룬다. 로르카가 화면에서 어떤 인물로 나타나는지보다, 미완성 작품과 그의 부재가 서로 다른 시대를 묶는 방식에 먼저 주목하게 된다.

완성되지 않은 희곡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선택은 역사 영화가 흔히 기대받는 ‘빠짐없는 설명’과 거리를 둔다. 기록되지 못한 말이나 끊긴 작업은 나중에 발견한 자료만으로 완전히 복원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기 전인 지금은 이 작품이 빈칸을 상상으로 메우는지, 끝내 빈칸으로 남겨 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공식 노트가 부재와 기억을 영화 전체의 축으로 설명하는 만큼, 보지 못한 것을 단정하지 않는 태도가 이 작품을 읽는 첫 기준이 될 수 있다.

1932년과 1937년 사이에 놓인 절단

영화제 소개에 적힌 첫 두 시점은 불과 5년 차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내전과 처형이라는 폭력이 놓인다. 세 시대를 단순히 ‘과거, 더 먼 과거, 현재’로 묶으면 1932년의 삶을 이미 1937년의 파국을 향해 가는 이야기로만 보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영화가 전쟁 이전 인물의 일상과 가능성을 얼마나 독립된 시간으로 보여주는지 궁금하다. 그 시간이 충분해야 뒤의 파괴가 단지 역사 연표의 항목이 아니라 잃어버린 선택으로 느껴질 수 있다.

공식 노트는 두 감독이 시간을 직선으로 따라가기보다 기억과 감정을 교차시킨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장면이 어느 해에 속하는지만 맞추는 관람은 부족할 수 있다. 누가 과거를 떠올리고, 어떤 말이 다음 시대로 이어지며, 이어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살피는 쪽이 형식과 주제를 함께 읽는 방법일 것이다. 실제 편집의 리듬과 연결 방식은 본편을 봐야 평가할 수 있다.

복원이 곧 회복은 아닐 수 있다

소개문에는 파괴된 예술, 강요된 침묵, 퀴어의 언어와 사랑의 증거가 발굴되고 복원된다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회복의 희망을 품지만, 기록을 찾았다는 사실이 폭력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사랑을 표현할 자유가 없던 시대의 흔적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부를 때, 발견한 사람의 목소리가 당시의 당사자를 대신할 수 있는지도 질문으로 남는다.

그 점에서 2017년이라는 세 번째 시점이 중요해 보인다. 역사적 상처가 과거의 비극으로만 전시되는지, 지금 말을 하고 기억을 고르는 사람의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의 결말을 미리 해석한 것이 아니라 공식 소개의 연도와 복원이라는 표현에서 출발한 관전 가설이다. 본편이 이 가설을 거스를 가능성도 열어 둔다.

자료 확인: 2026년 10월 8일. 제작연도·러닝타임·세 시대·감독 설명은 부산국제영화제 <블랙 볼> 공식 프로그램 노트를 기준으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