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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엿 같은 사랑 · 넷플릭스 · 12부작 · 2026년 8월 7일 공개
기억을 잃으면 나라는 사람도 사라지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상태에서 낯선 남자를 따라나서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곁에 머무는 남자. 《이런 엿 같은 사랑》 1화는 거짓으로 시작된 동거가 어떻게 균열을 내기 시작하는지를 꽤 촘촘하게 보여줍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남는다 — 기억상실 설정의 배경
눈을 떴을 때 자기 이름을 모른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1화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이름, 나이, 직업 같은 자서전적 정보를 통째로 잃어버린 상태인데, 이를 드라마에서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란 심리적 충격이나 외상이 원인이 되어 특정 기간의 개인 정보나 정체성에 관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지워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뇌 손상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차단해버리는 방식이라는 점이 신체적 기억상실과 다릅니다.
설상가상으로 열 손가락 지문까지 모두 훼손되어 신원 확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 상태에서 자신이 남자친구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등장하고, 3주 동안 수도권 병원을 다 뒤졌다는 말과 함께 그를 따라나서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뒤에 나오는 장면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께 살았다는 집에 들어선 주인공이 이 집에 있는 물건 중에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며 자신이 여기 살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장면입니다. 기억은 없어도 취향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죠. 이게 단순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제 경험상 이건 꽤 정확한 묘사입니다. 몇 년 전 조카 자전거 시범을 보여주려다가 이십 년 넘게 안 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달을 밟자마자 몸이 알아서 균형을 잡더군요.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타는 법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을 이루는 게 기억만은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고, 이 드라마가 그 감각을 설정의 핵심으로 밀고 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 해리성 기억상실증: 외상 후 자서전적 정보만 선택적으로 차단되는 심리적 기제
- 지문 훼손으로 신원 확인 불가 → 외부에서 정체를 증명할 수단이 없음
- 취향과 몸에 새겨진 감각은 남아 있어 거짓을 본능적으로 감지
제거 대상과 보호자 사이 — 장태하와 고지원의 관계 분석
정해인이 연기하는 거짓 남자친구 장태하의 정체는 사실 꽤 복잡합니다. 허성태가 맡은 조직 보스 백상길의 조력자이자 조직을 벗어나고 싶었던 인물인데, 백상길이 내건 마지막 조건이 바로 하영이 연기하는 검사 고지원을 제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억을 잃기 전의 고지원은 돈거래 현장을 포착하고 증거물인 시계를 바꿔치기하다 백상길과 정면으로 마주친 상황이었고, 그 사건이 두 사람을 엮어버린 겁니다.
드라마에서 이 관계는 양쪽 모두 정체를 숨긴 채 굴러갑니다. 고지원을 추적하는 검찰 쪽 인물은 신분을 감춘 언더커버였고, 곁을 지키는 장태하 역시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쫓는 쪽도 숨기는 쪽도 가면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장태하가 균열을 내는 방식이 저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고지원의 몸이 먼저 반응하는 장면, 맞춤 식단을 준비하고 쪄도 된다며 그래도 예쁘다고 말하는 장면. 논리가 아니라 감각과 감정에서 먼저 신뢰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폭 출신 캐릭터가 이 정도로 섬세하게 접근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다 장태하가 진실을 꺼내기도 전에 고지원이 SNS에서 자기 과거 사진을 발견합니다. 본명이 고지원이라는 것, 그리고 곁에 있던 남자가 조폭 출신이었다는 것을 동시에 마주치며 1화가 끝납니다. 정체를 알려주려던 사람보다 스마트폰이 먼저였다는 점이 얄궂습니다.
거짓이 진심이 될 수 있을까 — 로맨스 전망과 남은 질문
제목이 《이런 엿 같은 사랑》인 이유를 1화만 봐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엿처럼 늘어나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관계. 시작은 명백한 거짓이고, 그 거짓의 출발점이 상대를 제거하라는 지시였다는 점에서 이 로맨스의 기반은 꽤 불안합니다.
로맨틱 서스펜스라는 말이 요즘 자주 쓰이는데, 사랑과 위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감정선과 스릴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이 드라마는 그 공식을 따르면서도 한 가지를 더 얹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쪽은 기억을 잃어서, 다른 한쪽은 신분을 숨겨서.
제가 직접 1화를 보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건 거짓 동거의 윤리적 무게였습니다. 판단 능력이 손상된 상대를 속이는 일이 로맨틱하게 포장될 때 어디까지 용납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든 쪽도 그 불편함을 알고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목부터가 자기 고백이니까요. 그 자각을 끝까지 유지하는지가 이 작품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고지원이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장태하가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겁니다. 거짓 끝에 싹튼 감정이 서로의 삶을 실제로 구원할 수 있을지, 저도 2화가 궁금해진 건 사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해리성 기억상실증이 실제로도 이렇게 나타나나요?
A. 실제 해리성 기억상실증은 주로 심각한 심리적 외상 이후 특정 기간의 개인 정보가 차단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드라마처럼 이름과 직업을 통째로 잊는 전반적 기억상실은 드물지만 보고된 사례는 있습니다. 다만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법처럼 몸에 새겨진 기억은 보통 보존되는 경우가 많아, 드라마의 설정이 완전히 근거 없는 건 아닙니다.
Q. 장태하는 처음부터 고지원을 좋아했던 건가요?
A. 1화만 보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을 벗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제거 작전에 투입됐지만, 실행하지 않고 옆에 머물기로 한 건 분명합니다. 감정인지 계산인지 아직 모호하게 열어두는 지점이 오히려 2화를 당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고지원이 검사라는 게 나중에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A. 기억을 되찾으면 고지원은 장태하가 조폭 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을 제거하러 왔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됩니다. 검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이 돌아올수록 그 간극은 더 커질 텐데, 그게 이 로맨스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일 겁니다.
Q. 이런 엿 같은 사랑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A. 넷플릭스 오리지널 12부작으로 2026년 8월 7일 전편 공개됐습니다. 정해인이 조폭 출신 복싱 코치 장태하를, 하영이 기억을 잃은 검사 고지원을, 허성태가 조직 보스 백상길을 연기합니다. 장르는 로맨틱 서스펜스로 분류하는 게 가장 가깝고, 사랑과 범죄 스릴러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에 기억상실 미스터리까지 얹혀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약해지면 전체 균형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라 연출과 편집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입니다.
결론
《이런 엿 같은 사랑》 1화는 설정이 자극적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방식이 생각보다 꼼꼼합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는 심리적 기제, 취향과 몸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디테일, 양쪽 모두 신분을 감추고 있다는 구조까지. 거짓으로 시작된 관계가 어디까지 진심이 될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고 갈 의지가 있는지, 저는 그 부분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다만 판단 능력이 손상된 상대를 속이는 설정을 로맨틱하게만 소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제목이 이미 스스로를 꼬집고 있는 만큼, 그 자각이 결말까지 이어진다면 꽤 단단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2화에서 고지원이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